|
|
장쩌민 그 사람-(80)- 제20장: 사스를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군권 유지를 위해 애써 허덕이다
2008-05-20 03:06:43 | 조회 11676
(사스를 피해 도망 다니며 군권 유지를 위해 허덕인 장쩌민, 세 번째 시간)
살인하고 입을 막는 것이 바로 “안정”
각 국의 조직과 여론에서 중국 정부의 “사스” 처리 방식에 대한 비난이 끊이지 않자 국가 주석 후진타오는 위생부 관료들에게 “비전형성 폐염 병례”를 더 이상 숨기지 말 것을 명령하고 원자바오와 대중 매체 출현을 통해 직접 사스 방지에 나섰다.
그러나 장쩌민은 뤄간과 우관정이 쓰러진 후, 곧바로 친지들과 상하이로 피신했다. 후진타오를 제거하려는 목적으로 장쩌민의 측근들은 후방으로 물러서서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에게 총대를 쥐어 주고 최전방에서 사스와 싸우게 했다. 상해에 도착한 장쩌민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상하이를 지킬 것을 명령하자 상하이 시위원회 서기인 천량위(陳良宇)는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으며 소리없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가는 이 전염병과 싸우느라 끊임없는 괴로움을 호소하게 되었다,
장쩌민이 소위 “안정이 모든 것을 잠재운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상해에서 사스로 병원에 입원하는 숫자와는 상관없이 정부측 발표는 언제나 4명을 유지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어떤 사람은 “정말 웃기는 이야기죠, 우리 아파트에서만 5명이 사스에 걸렸는데”라며 현황을 비웃었다. 그러나 얼마 후 3명의 외국인 환자 발생으로 보고를 위해 감염자수를 7명으로 조정한 이후 전염병에 걸린 마지막 환자를 치료 할 때까지 상해시가 발표한 감염자수는 언제나 7명이었다. 장쩌민의 “삼개대표(三個代表)”론은 이러한 방식으로 상해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후진타오가 남방의 사스 현황에 대해 시찰하고 난 보름 후, 사스를 피해 상하이로 피신한 장쩌민은 4월 26일 상하이에서 “중국은 사스 치료에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는 공개 성명을 발표했으나 이미 장쩌민과 그의 측근들이 사스를 대비하기도 전에 진실을 은폐하고,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피신한 사실을 알고 있던 인민들은 그의 거짓된 발표에 원망과 경시를 퍼부었고 북경 대학교의 한 학생은 난국을 피해 상하이로 피신한 그를 인터넷을 통해 신랄히 비판하기도 했다.
장쩌민이 어디로 피신하던지 사스의 위력은 더해만 갔다. 상하이시가 비록 그의 명령처럼 목숨을 걸고 사수했지만 결과는 그다지 좋질 않았다. 상하이도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한 장쩌민은 랴오닝(遼寧), 산둥(山東)으로 피신했다가 5월 말, 사스가 좀 누그러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비밀리에 베이징으로 돌아왔으나 여전히 중난하이로 가지는 못하고 위취안산(玉泉山)에 머물렀다. 이에 대해 한 시민은 ‘죽음이 두려워 이리저리 피해 다녔는데 이는 그가 어디도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며 그의 이런 행동을 비웃었다.
사스 만연의 전반 과정을 보면 장쩌민과 그의 측근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고수했던 기만정책은 결국 지구의 대재앙을 초래한 직접적인 이유가 되었고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쳐 댄‘안정유지’는 오직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서였을 뿐 인민들의 생사를 염려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사스 전염병이 공개적으로 발표된 후에도, 장쩌민은 여전히 전염병과 관련된 사실을 은폐했다. 미국 주간지 <타임매거진> 보도에 따르면, 4월 22일 세계보건기구 전문가들이 베이징제팡쥔(北京解放軍) 309병원에 도착하기 몇 시간 전, 309병원은 40여 명의 사스 환자를 한 여관으로 옮겼다. 그 밖에 중르유이(中日友好) 병원에서도 31명의 사스 환자를 구급차에 태우고는 다른 곳으로 급히 이동시키는 상황이 발생했다. <타임매거진>에 전화를 걸어 이 제보를 한 기자와 통화를 했는데 그녀는 중르유이 병원의 간호사들은 이 조치로 인해 사스 환자와 함께 구급차에 갇혀 있어야 했으므로 아주 화가 나있었다고 했다.
중공은 어떤 지방에서라도 사스가 발발하면 지역 책임자를 면직 시킬 것이라는 장쩌민의 명령을 전국 각지로 하달했다. 이로 인해 지방 각 급 정부 관료들은 발병 상황을 상부에 보고하길 꺼려했고 각종 방법을 강구하며, 사스를 “소멸(歼灭)”하고 은폐했는데 그중 가장 보편적인 수단으로는 병원에서 사스로 숨진 환자의 사망 사유를 바꾸는 것이었다. 내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사스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병원에서는 아직 살아있는 환자를 “안락사(安樂死)”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그 당시 각 지역에서 사스는 지역 정부의 절대 기밀이 되었다.
광둥성의 한 익명의 의사에 따르면 “사스 환자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없지만 베이징 정부가 각 지역에 지표, 즉 지역 마다 배정 환자 수를 통보한 후, 지방 관료들은 중앙의 배정에 맞추어 보고 했으므로 그들이 보기에 중국이 발표한 통계자료는 늘 한결같았다.”고 했다. 또한 선전(深圳) 공안국에서 사스 사망자 안건을 전담한 한 경찰의 증언에 따르면 “사스로 죽은 환자는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 공안국은 그 시체를 소각했으며 베이징 정부가 선전에 할당한 수는 30명을 초과할 수 없었지만 사실 선전에서 사스로 사망한 환자는 정부의 할당 수를 훨씬 넘어섰다.”고 했다.
광둥, 쓰촨(四川)과 둥베이산성(東北三省) 등지에서는 군인들이 “봉촌(封村)”의 방법으로 사스가 발생한 수많은 촌락을 봉쇄했는데 그 방법으로는 전화선을 절단하거나 주민의 이주를 금지 시키며 정보를 봉쇄하는 등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한 주민은 촌락이 봉쇄당한 후, 몰래 그곳을 빠져 나오려고 했지만 군인에게 발견되어 현장에서 사살 되었다.
봉쇄된 대다수 촌락에서 경찰은 주민들이 거의 죽어 없어지길 기다렸다가, 시체를 대폭적으로 소독 처리하곤 했는데 중국 선전 공안국의 한 경찰은 “병원에서는 이미 사스 사망자의 시체 처리를 책임지지 않았고, 군대와 공안국이 이를 이어서 관리했으므로 군부대가 사망자의 화장을 담당했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정보에 따르면, 6월 말까지 둥베이 지역에서만 만 명이 사스로 사망했으나 중공은 이 사실과 대륙 언론의 보도를 엄격하게 봉쇄했다. 중국 선전부의 한 문건에는 언론사들이 사스 관련 보도시 반드시 신화사가 보낸 원고를 그대로 올려야 하며 그 밖의 지역에서는 독자적으로 사스와 관련된 어떤 소식지도 발간할 수 없음이 명시되어 있었다. 이 일이 있기 전, 중공 선전부는 전국적으로 언론을 감사하고 신문사들을 단속해 선전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언론사는 아예 보도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2002년 11월 16일 광둥에서 처음으로 사스 환자가 확인된 후, 사스 관련 보도에 대해서 중공 고위층에서는 대중에게 즉시 이 같은 사실을 알려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재앙이 올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으나 장쩌민은 도리어 “더 나은 번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안정이 중요하므로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200만 정도의 희생은 감수할 수 있다.”는 큰소리를 쳐댔다 당시 CCTV의 사스 관련 보도는 장쩌민과 그의 측근들의 손아귀에 있었으므로 해외에 용감히 진실을 말한 사스 영웅인 장옌융은 중공에 의해 입이 막혀버렸고, 또한 군대 기율에 의해 처벌을 받았다.
장쩌민과 중공은 사스를 방치하여 확산시킨 자신들의 모든 책임을 무고한 인민들에게 돌리며 “고의적”으로 사스 바이러스를 확산시키는 사람을 극형으로 처리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정부의 과실로 죽음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인민들이 어떻게 “고의적”으로 사스를 퍼뜨린다는 말인가? 게다가 장쩌민은 사스를 파룬궁을 비방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로 삼았다. 6월 9일, 신화사는 파룬궁 수련생이 “사스”를 전국으로 전파 시킨다는 기사를 내보냈으나 정작 기사를 내보낸 이들 조차도 이 사실을 믿지 않았다. 외국 언론들도, 이 기사가 오히려 장쩌민이 사스 발병 마을을 봉쇄할 것을 명령한 사실에 신뢰성을 더해주고, 동시에 이 기회를 빌어 파룬궁의 진상 밝히기 활동을 탄압하기 위한 것이지 진정으로 사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논평했다.
사스 사건을 통해, 결국 장쩌민은 마치 쥐와도 같은 그의 소심한 성격과 인민의 생명을 하찮은 지푸라기같이 여기는 차가운 본성의 진면목을 다시 한번 드러내게 된 것이다.
중문 : http://www.dajiyuan.com/gb/5/6/17/n957853.htm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11750KHz, 중국시간 오후 5-6시, 한국시간 오후 6-7시
http://www.soundofhope.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