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안빈낙도(安貧樂道)는 공자(孔子)의 언행록(言行錄)이라 할 수 있는 '논어(論語)'의 '옹야편(雍也篇)'이나 '맹자(孟子)'의 '이루장구하(離婁章句下)'에 나오는 말이다.
'구차하고 가난하지만 마음을 편히 하고 걱정하지 않으며 도를 즐긴다'는 뜻으로 빈곤 속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도를 찾고 배우며 얻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즐거움임을 비유하는 말이다.
안빈낙도는 공자가 제자 안회(顔回)에 대한 공자의 평가에서 유래했다. 공자는 일생 동안 무려 제자(弟子) 3000여 명을 뒀는데, 그중 안회(일명 안연(顔淵))을 가장 총애했다. 수제자(首弟子) 중 수제자였던 셈이다.
그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우쳤으며('문일지십(聞一知十)'), 워낙 학문을 좋아해 나이 29세에 벌써 백발(白髮)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덕행(德行)이 뛰어나 스승인 공자 자신도 때로 그로부터 배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물주(造物主)는 그에게 뛰어난 재능과 함께 가난을 선물로 주었다. 그는 찢어지게 가난해 끼니 거르기를 밥 먹듯 했으며 평생 지게미(술을 담고 남은 찌꺼기)조차 배불리 먹어본 기억이 없을 정도였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나이 서른 하나에 요절(夭折)하고 말았으니 공자가 오죽했으면 그의 죽음을 두고 '하늘 탓'이라고 통탄(痛嘆)했을까.
공자가 말하기를, "어질도다 안회여! 한 대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먹으면서 좁고 누추한 거리에 사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거늘, 안회는 그 속에서도 즐거움을 고치지 아니하니 어질도다 안회여!"
그러나 그는 가난을 운명인 양 받아들이고 늘 낙천적으로 살았으며 덕(德) 닦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어도 즐거움이 그 안에 있고 의롭지 않게 부귀를 누림은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을 뿐이다('논어'의 '술이(述而)')"라고 했던 공자는 그를 찬탄(讚嘆)해 마지않았다.
'가난함을 편하게 여기면서 인간의 최상 가치인 도를 즐긴다'는 안빈낙도의 처세는 다소 지나칠 만큼 청빈(淸貧)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인간의 삶 속에는 나름대로 추구하는 최소의 가치마저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부귀(富貴) 역시 또 다른 하나의 성취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간직하고 영위해야 할 부분은 이러한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는 올바른 기준이다. 물론 그 기준은 고집과 집착(執着), 욕심과 허망(虛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무욕(無慾)의 가치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확고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중국 고대 문화에서는 ‘득도(得道)’를 인생의 최고 목표로 삼았다. 빈곤 속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도를 찾고 도를 배우며 도를 얻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즐거움으로 여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안빈낙도(安貧樂道)에 담긴 의미이다.
디지털뉴스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